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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칼럼] 동의서(同意書)에 대하여
  • 글쓴이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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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나 가족들은 검사를 하거나 수술을 할 때 동의서를 써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간단한 피 검사를 하거나 가슴사진을 찍는 등 위험이 별로 없는 진료라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으러 온 것으로 진료행위에 동의를 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따로 동의서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진료행위에는 항상 어느 정도의 위험이 따른다. 예를 들면 흔한 근육주사를 엉덩이에 맞다가도 바늘이 부러져 근육에 들어있는 바늘을 수술로 꺼내야 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고 부작용이 거의 없다고 알려진 약물에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환자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의료인의 잘못 때문이라고 주장하여 분쟁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부러 그런 결과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잘 처리된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환자에게 그런 위험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는가 하는 것이고 그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 동의서이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동의서 양식을 만들어 놓고 설명했는지 확인하고 서명을 받고 있다.

 

  그런데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환자나 가족은 답답하고 갑갑하다. 위험성이 전혀 없는 검사나 수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이 따르더라도 꼭 필요한 검사나 수술이라면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답답하다. 더군다나 그 검사나 수술이 필요한 이유와 다른 방안이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의료진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환자나 가족으로서는 동의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의료진이 과장하지 않고 위험 정도를 설명하였다고 하여도 몇 천분의 일 정도의 가능성일망정 목숨을 잃거나 큰 장애가 올 수 있다면서 동의해 달라고 하면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환자나 가족이 동의서를 내 주지 않으면 검사나 수술을 할 수 없다고 설명하면서 (협박으로 듣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검사나 수술에 동의하지 않아 생기는 피해에 대해서 의료진이 설명을 했다고 확인해 달라는 경우도 있다.

 

  환자가 의료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의료진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사고가 날 확률이 적은 것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동의를 해 준다 해도 동의서를 쓸 때는 찜찜하고 불길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특히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이 없는 환자의 가족들은 사고 자체가 황당한 경험이어서 이해할 수 없고 사고로 경황이 없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위험 정도를 헤아려 보고 동의를 할 여유가 없다. 그런데도 동의서를 서두르고 재촉하는 의료진들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치료 경과가 좋지 않아 불만이 많아진 가족들은 동의서를 써 준 것이 잘못을 불러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까지 갖게 되어 뒤에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환자가 진료에 대하여 알 권리와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는 선언은 당연하다. 그러나 소화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정보를 주고 선택하고 결정을 하라고 하는 것은 형식적으로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될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답답하고 갑갑하고 찜찜한 처지에서 환자와 가족을 구하는 길은 의료진에 대한 믿음에 있다. 의료진의 행동과 설명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정보가 모자라고 다른 방안을 찾지 못하는 환자와 가족들도 선택하고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주기 위해 의료진이 해야 할 일은 항상 단순하고 분명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내 가족이라면 이 검사나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동의서에 서명하겠는가?”

 

○ 양길승 녹색병원장

 

 

   -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 입학

   - 아일랜드 국립 골웨이 의과대학 졸업

   - 노동과 건강연구회 창립

   -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창립

   - 원진노동자건강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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