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보다 예방이 낫다”는 말은 많이 듣는 말이다. 그런데 치료를 어떻게 받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예방을 어떻게 실천하는 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치료는 전문화되고 체계화되었고 전문가가 있어 시키는 대로 따르면 되지만 예방은 개개인에게 맡겨져 있어 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고 효과도 밝혀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흔히 장수비법이라고 하면서 소개되는 특이한 식사방법이나 생활습관을 예방의학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히 그런 예방은 치료보다 못하고 과학적인 예방의학의 범주와 영역은 상식적인 생각과 크게 다르다.
역사적으로는 확실히 예방의 효과가 치료보다 컸다. 인간수명이 길어진 것은 항생제의 개발 때문이 아니라 상수도의 보급과 식생활이 좋아진 덕분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밝혀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기술의 발달이 더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착각은 치료전문기관으로 병원이 발전하고 치료에서 병원이 차지하는 역할이 커진 근 ․ 현대에 와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개인에게 새로운 항생제나 치료법이 눈에 보이는 효과를 확실하게 내면서 그런 치료방법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환경이 변화한 것은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모든 효과의 공이 치료에게 돌아간 것이다.
치료의학은 갈수록 첨단화하고 고가의 장비는 속속 개발되고 있는데 예방의학하면 사람들은 모기를 없애기 위한 방역사업이나 예방접종을 떠올릴 정도이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보건소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낮은 평가도 영향을 주었다. 치료의학이 개개인의 질병에 집중한다면 예방의학은 개개인 보다는 대중을 상대로 그중에서도 건강문제에 있어서 약자라고 할 수 있는 노인과 영세민을 대상으로 보건소 등 공공기관에서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지금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방의학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궁색하고 쇠퇴해 가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예방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건강검진이 일반 사람들에게 참으로 중요하다. 현재 직장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과 성인병검진에 대해 공익광고까지 나와 홍보에 힘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뢰를 하지 않고 있다. 정작 받고 싶은 검사가 들어 있지 않거나 심지어는 검진을 받은 후 얼마 안 있어 심각한 질환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불신을 받게 된 경위에는 의료기관의 불성실한 자세 등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직장검진이나 성인병검진을 받기보다 종합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직장검진이나 성인병검진은 참으로 중요한 건강평가 방법이고 잘 활용한다면 종합검진 못지않게 쓸모가 있다. 직장검진과 성인병검진은 집단검진으로 여러 사람을 상대로 실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상 집단에 필요한 검사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즉 필요성이 인정된 검사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검진결과를 가지고 검진한 의사나 평소에 다니는 의료기관에 가서 상담을 하고 더 필요한 검사를 하거나 과거 검사기록과 비교하면 습관적으로 종합검진 하는 것보다 비용도 절감되고 자원도 낭비하지 않는 탁월한 건강유지 방법이 될 수 있다.
한번 어떤 검사에 이상이 나온다고 해서 놀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건강과 질병상태에 대한 판단은 과거 검사기록과 현재 상태에 대한 깊고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시적인 변화가 올 수 있는 상황이나 환경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않고 검사수치만으로 진단하는 것은 부정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집단검진을 받는 것은 검사자료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바람직한 일이다.
개인만이 아니라 정부당국에서도 집단적인 검사 결과가 국가적인 계획을 세우는 기초로 쓸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정부는 올해부터 전국에 걸쳐 평생건강관리프로그램이라 하여 지원자를 대상으로 앞으로 10년간 여러 가지 검사를 무료로 해 주고 있다. 전국의 유명 의과대학과 병원들이 함께하는 이 프로그램으로 예방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효과를 만들어 낼 것을 기대한다.
○ 양길승 녹색병원장
-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 입학
- 아일랜드 국립 골웨이 의과대학 졸업
- 노동과 건강연구회 창립
-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창립
- 원진노동자건강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