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작년 한 해 13,293명이 자살했다고 한다. 신문 보도는 하루 39.4명이 목숨을 스스로 끊은 것이고 39분마다 1명이라고 나눗셈을 해서 실감나게 한다. 20대에 죽은 사람들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자살하는 사람의 31.7%가 60대 이상이라 하니 자살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연령층의 사람에게 실존하는 위험이다. 우리나라가 산재왕국이라고 불릴 때에도 산재로 인한 사망자 수는 교통사고의 4분의 1 수준이었는데 이제 자살로 죽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넘어서 버렸다. 더 이상 사회가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여 방치해서는 안된다.
알려진 자료에 따르면 자살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염세 ․ 비관이 43%, 병고 26%, 치정 ․ 실연 ․ 부정 9%, 빈곤 및 사업실패 8%, 가정불화 7%이고 정신이상은 6%이었다. 염세 ․ 비관이 가장 많고 여기에 정신이상까지 더하면 50%가 우울증 등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가 자살에 이른 셈이다. 여기에 정신건강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해야 할 필요성이 분명해 진다.
정신건강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무시하거나 특별한 사람들의 문제로 생각해 왔다. 정신병원하면 소위 “미친‘ 사람들이 수용시설에 갇혀 있으면서 전기치료를 받거나 초점이 없는 넋 나간 눈빛으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그림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는 환자가 있어도 집안의 수치가 되고 다른 가족까지 의심받게 된다고 집안에 숨기거나 요양원이라는 이름의 사설기관에 보내기도 한다. 21세기에 중세기적 사고와 인식을 못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병이 귀신에 홀린 것이 아니고 구금과 격리가 아니라 다양한 치료방법과 약물을 통하여 상당부분 치료와 관리가 가능한 병이라는 것은 결코 비밀이 아니다. 환자 중에는 치료에 반응이 거의 없는 완강한 환자가 있지만 결코 다수가 아니다. 오히려 정신적인 장애라고 알고 있지 않은 감정적 정서적 장애나 사회 부적응증 등이 적절한 치료를 통해 환자는 물론 가족과 동료 등 모두에게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고 있다. 문제는 정신병에 대한 병적인 편견으로 우리 사회가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폐해가 심각한 것이고 그 한 결과가 자살이 넘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최근 장애인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배우고 있다. 거리에서 장애인을 거의 볼 수 없었던 것은 장애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을 집에 가두어 두고 장애인이 돌아다니기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도로 등 사회적 환경 때문이었다. 이제 휠체어를 탄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턱이 없는 거리가 늘어나고 저상버스가 생기고 장애인 콜택시가 시범운영 되는 등 작지만 기대할 변화가 오고 있다. 장애인이 거리로 나오면서 그 장애인을 집에 가두고 돌보아야 했던 사람들이 장애인과 함께 풀려나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올리고 있고 이야말로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변화이다.
그런 장애인 중에서 가장 어려운 상태에 있는 것이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비정신적 장애인보다 더 많은 보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보호와 관리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의료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정신건강에 대한 편견을 버리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장애인이 처음 거리에 나설 때보다 더 큰 논란이 있겠지만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는 일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낙인찍기를 거부해야 한다. 먼저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자. 그리고 개개인이 또 개개 가정이 그 짐을 다 지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 그래서 자폐증세가 있는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우울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는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 가자. 어려워하는 이웃에 따뜻한 눈을 돌리자.
○ 양길승 녹색병원장
-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 입학
- 아일랜드 국립 골웨이 의과대학 졸업
- 노동과 건강연구회 창립
-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창립
- 원진노동자건강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