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개방과 관련하여 농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자식 같은 벼를 태우고 심지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도 있어 농민들의 시름과 분노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있는가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느끼고 있고 그래서 같이 걱정을 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시위도중 부상을 입어 치료받는 농민들이 여럿 있다고 하고 그 중 한 분은 목숨을 잃어 그 원인을 두고 경찰과 대책위원회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렇게 안타까운 일을 두고 한심한 논란을 벌이는 것은 한마디로 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탓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문가가 신뢰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고 바로 지금 우리 사회 병폐의 본질이기도 하다.
“시위 도중에 받은 폭력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40대의 젊은 농민이 뇌 손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환자가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부터 그렇게 말하여 처음 갔던 병원이나 나중에 후송되어 간 대학병원 병록지에는 환자의 말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뇌 앞부분에 출혈이 있었고 수술을 두차례 하였지만 악화되어 결국 사망하였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을 하였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전문가들이 부검을 하고난 뒤 이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약칭 국과수)는 돌아가신 분이 머리 뒷쪽에 손상을 입고 뇌출혈과 두개골 골절로 사망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머리뼈는 뒷부분에 뼈에 금이 가는 ‘선상골절’(線上骨折)이 있고 뇌출혈은 머리 앞부분에 크게 생겨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대측손상이라는 것이다. 두개골이나 뇌에 손상이 오는 방식에 따라 전문가들은 동측손상과 대측손상으로 구분한다. 동측손상이란 예를 들어 망치로 머리를 때리면 맞은 쪽의 두개골이 손상을 입고 뇌도 같은 쪽이 손상을 입는 것을 말한다. 대측손상이란 뇌 손상이 맞은 쪽이 아니라 그 반대쪽에 생기는 것을 말한다. 국과수는 돌아가신 분이 대측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넘어져서 생긴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국과수의 발표는 즉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약칭 인의협) 의사들의 반박을 받았다. 인의협은 부검에도 의사를 보내 입회를 하였었고 머리 뒷부분에 충격이 주어졌고 그래서 대측손상이 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동의한다. 인의협은 뒷머리에 충격이 주어진 것이 넘어져서 생겼다고 해석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신경외과 의사라면 누구나 앞머리의 뇌출혈이 넘어졌을 때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신경외과학회에서 펴낸 신경외과학 교과서에도 대측손상은 닿는 면적이 넓고 부드러운 물체와 부딪혔을 때에도 온다고 나와 있다. 실제로 머리를 밀어서 벽에 부딪혔을 경우나 권투선수들이 심하게 머리를 맞고 나서 생기는 뇌 손상도 대측손상이다. 그리고 법의학 교과서에는 앞머리에 외력이 가해지면 뒷머리에 대측손상이 오는 것은 7% 정도이지만 뒷머리에 외력이 가해졌을 때에는 앞머리에 83%나 대측손상이 온다고 밝혀져 있다. 실제로 뇌 손상 환자를 일상적으로 보는 신경외과 전문의들이 이 환자의 첫 머리 CT사진을 보고 그냥 넘어져서 생긴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지난 27일에는 돌아가신 분이 시위 현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어 네 명이 환자를 옮기는 사진이 시간이 찍힌 채 공개되었다. 뇌 손상을 입어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이 돌아오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그분을 옭기는 장면이 찍힌 증인이 피해자가 맞고 뒤로 넘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였다. 환자가 그 후 보여준 과정은 뇌출혈 환자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구토를 하고 어지럽다고 하고 제대로 서지 못하는 증상을 보이는 것을 본 주변 사람들이 병원에 데려갈 때까지 넘어졌다거나 그밖에 다른 방식으로 다쳤다는 말도 없다.
시위 후에 의식을 잃은 책임이 진압과정 때문이라면 과잉진압에 나선 공권력의 책임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해석이 왜곡되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결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이기에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공권력도 전문가도 사회의 신뢰가 없으면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 많은 것을 가정하는 임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증거가 분명한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인 논리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합리적일 때에만 신뢰를 받는다.
사족이지만 사망의 다른 원인을 찾는 부분에 대해 한마디 붙인다. 돌아가신 분이 처음 병원에 갔을 때 혈액검사를 하였더니 피 응고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혈소판이 75,000개로 정상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출혈시간 검사는 정상이었다). 나중에 부검에서 들어난 것처럼 환자는 간경화를 앓고 계셨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길 가능성은 더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뇌 손상이 저절로 올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 원천적인 책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 양길승 녹색병원장
-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 입학
- 아일랜드 국립 골웨이 의과대학 졸업
- 노동과 건강연구회 창립
-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창립
- 원진노동자건강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