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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칼럼] 의료는 사회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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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자료는 경향 신문에 연재 되었던 <양길승의 세의보감>에 실린 내용입니다.

    (게재일자 : 2005.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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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전인 1983년부터 3년 가까이 아일랜드에서 보았던 일이 오늘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과 대비가 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일랜드는 영국 옆에 있는 섬나라로 땅덩어리는 우리나라(남한)보다 조금 작고 인구는 약 3백만명 가량 되는 곳이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있어 그때까지도 식민지해방투쟁으로 벨파스트나 데리에서 폭탄이 터지는 등 테러가 벌어지곤 했다. 지금은 아일랜드에서 산업이 크게 발전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유럽에서도 못사는 축에 속하고 변화가 없어 보이는 나라였다. 그런데도 의료는 우리나라처럼 보험제도가 아니라 영국과 같이 국가가 보장해주는 제도로서 개인은 의료비를 전혀 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우리나라와는 아주 다르다. 예를 들어 무슨 검사를 하려거나 입원을 하게 하려면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하는데 여기까지는 우리나라나 아일랜드나 같지만 그 다음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나 가족이 비용부담에 대해 동의를 해야만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아일랜드에서는 그런 과정이 아예 필요 없다. 그 대신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원하면 검사를 하거나 입원할 수 있지만 아일랜드에서는 환자가 원해도 의사가 진찰해보고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 해 주지 않는다.


 캐나다로 이민을 간 한국 사람들이 병원을 이용하기 힘들다고 하면서 불평하는 것을 보면 내시경검사나 소변검사 등 검사를 받기 어렵다는 것이 많은데 그곳도 영국과 같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는 사람들은 미국에 가서 검사를 하는데 진료 받기는 쉽지만 비용은 엄청나게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즉 국가가 의료보장을 하는 나라에서는 어떤 치료를 할 것인가 하는 의료 내용을 결정하는데 환자가 느끼는 필요보다 의학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이 더 중요한 결정요인이어서 의료를 이용하고 적용되는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아일랜드에서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았다. 그리고 그 이유도 알기 쉽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오래 살기 때문에 당연히 아픈 사람에 여성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와 반대이다. 녹색병원에서 보면 남여의 비는 2대1로 남성이 여성의 두 배이다. 우리나라도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길어 당연히 여성 노령인구가 많고 그래서 여성이 더 많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그 곳 병원에서도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의 질병이 남성의 질병만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성의 질병은 치료를 해야 하는 질병으로 사회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성차별의 결과이고 남성우위문화의 숨길 수 없는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성은 당장 죽을 병이 아니면 밥과 빨래, 아이 돌보기 등 집안일을 팽개치고 입원할 수 없다.

 

 또 아일랜드 병원에서는 입원환자의 대다수가 노인이었다. 이미 80년대에 들어서기 전부터 노인의학이 의학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환자의 평균 연령이 훨씬 낮다. 우리 사회가 산업재해나 교통사고 등 보다 젊은 사람들이 건강을 손상당하는 경우가 많은 불안전한 사회이기 때문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노인의 질병에 대해서는 체념하거나 차별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른을 공경하는 좋은 풍속을 갖고 있으면서도 노인의 질병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노인의 병은 꼭 치료해야만 하는 병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아일랜드에서는 장애인이 많았다. 그 지역이나 인종에 특별히 유전적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어서 절대적인 수가 많은 것이 아닌데도 복지수준의 차이로 장애인이 입원하거나 치료받으러 다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장애인이 많이 눈에 뜨이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비로소 장애인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드리고 사회가 장애인의 고통을 안아 가도록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너무나 장애인들의 바람이나 기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대다수 장애인은 여전히 집안에 갇혀 있고 도움이 없이는 대중교통 수단으로는 돌아다니지 못해 일상생활을 제한 받고 있어 취업을 통한 자립은 꿈꾸기도 어렵다. 장애인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능력만 되면 해외로 나가려는 것을 손놓고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여성과 노인과 장애인이 많지 않은 병원 풍경은 우리 사회가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는 수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거울처럼 비추어 준다. 한 사회의 수준은 사회적 약자가 어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되어 있는가에서 판가름 난다. 병원이 사고를 당하거나 갑자기 아파서 오는 환자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만성적인 장애를 이겨내어 삶의 질을 높이는 기능을 할 수 있을 때 의료는 힘 있는 사람들만이 살아가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정글에서 살 것인지 사람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 것인지는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결단과 선택에 달려있다.

 

* 작성자 : 양길승 녹색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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