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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다친 노동자들 건강하게 일터 돌아오게…연대와 치유 지향”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10-24 09:06:36
  • 조회수 95


‘전태일 의료센터’ 건립 나선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 판화가 이철수 대담


 

전태일의료센터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힘을 합친 이철수 판화가(왼쪽)와 임상혁 녹생병원장이 10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내 계단에 설치된 판화작품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터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병원.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하지만 현실에선 좀체 찾기 힘든 병원.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전태일의료센터’는 그런 병원이다. 지난해 9월 녹색병원은 개원 20주년을 기념해 ‘전태일의료센터’를 설립하기로 하고 건립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병원 건립에 드는 예상 비용은 190억원. 이중 50억원을 시민 모금으로 마련키로 했고, 각계에서 따뜻한 손길을 보태고 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판화가 이철수는 다음달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전시회를 연다.

‘전태일의료센터’를 위해 의기투합한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과 이철수 작가를 지난 10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 원장실에서 만났다. 지하 2층에 있는 원장실은 다섯명 정도가 둘러앉으면 빼곡히 들어찰 정도로 좁았다. 2003년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직업병을 인정받은 보상금으로 지어진, 여느 병원과는 다른 탄생기를 가진 녹색병원이 만드는 ‘전태일의료센터’는 어떤 병원인지 먼저 물었다.

임상혁=기존 녹색병원에서 하던 일을 좀 더 많이, 넓게 해보자는 의미입니다.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확장하자는 거지요.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라는 개념을 넘어 다시 건강한 몸으로 회복해 일터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병원 말입니다. 일하다 다쳐도 치료받고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것은 모두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게 현실입니다. 우리나라 산재 노동자들이 일터에 복귀하는 비율은 35% 정도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직장을 잃거나 더 못한 직장으로 밀려나지요.


임상혁 녹색병원장은 “전태일의 배려와 희생정신을 병원을 통해 실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다쳐도 생계 위해 병원 못 가 버티다 몸 망가진 경우 다수
전태일의 배려와 희생정신 병원에서 실현하고픈 마음

- 시민 모금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임상혁=전태일의료센터는 사회와 같이 아파하고, 아픈 사회를 치유하는 병원을 지향합니다. 돈을 모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은 우리 국민과 우리 사회가 참여해서 약하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연대를 하자는 취지였어요. 진정한 국민의 병원이 되는 실험을 하고 싶었던 셈이지요. 전태일 정신은 ‘연대와 나눔’이잖아요.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이런 취지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참여 요청을 드렸더니 이철수 작가님께선 “전태일이 나를 불러냈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철수=처음 원장님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치 “너도 나오라”고 전태일이 호명한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함께 한 많은 분들도 아마 그런 마음을 갖지 않았을까 싶어요.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며 받은 박봉을 쪼개 함께 일하던 누이들에게 붕어빵을 사서 건네주던, 청년 전태일의 그 마음자리는 순수한 인간애였습니다. ‘전태일의료센터’도 우리사회의 ‘착한 병원’을 꿈꾸며 그 역할을 감당하게 되겠지요. 사실 저는 병원이름에 ‘전태일’이 붙으리라곤 상상하지도 못했어요.

-말이 나온 김에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병원에 붙이기로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임상혁 =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알리고 싶었거든요. 동시에 그 이름에 씌워진 오해도 풀고 싶었고요. 과격하다, 급진적이다 하면서 비틀어진 낙인이 찍혀 있는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도 아니면 아예 요즘 젊은 층에게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름이잖아요. 하지만 이 이름은 앞으로도 계속 ‘제대로’ 알려져야 합니다. 인간 전태일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는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어요. 남을 배려하고 희생을 실천했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위인’이었지요. 그래서 배려와 연대의 정신이 희미해진 지금, 전태일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실천해보자는 욕심이 있었던거죠.

이철수 = 원장님 말씀처럼 진영의 딱지가 붙어 특정한 그룹에서만 언급하는 이름이 된 것이 현실이지요. 오해를 풀고 그의 이름을 제자리로 돌려야할 필요가 있어요. ‘전태일’은 이 시대 우리 모두의 전태일, ‘순정한 인간애’라는 뜻을 담은 이 시대의 보통명사가 되어야 합니다.

녹색병원은 민간병원임에도 그동안 공익의료에 분투해왔다. 교통사고가 많은 피자배달을 줄이기 위해 ‘30분 배달제’ 폐지를 이끌어 낸 것도, 서서 일하는 마트 노동자들에게 의자를 제공하는 캠페인을 진행한 것도, 폐지수집 어르신들이 쓰기 편한 리어커를 연구하고 수거가 쉬운 폐지배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도 다치지 않는 노동에 대한 오랜 고민의 결과였다.


판화가 이철수는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 참여요청을 받았을때 ‘너도 나오라’고 호명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전태일 이후 오랜 세월 지나도 지금 더 나아진 게 맞나 의문
건립 취지 공감해 전시회 마련…이번엔 판매에 욕심내겠다

-전태일 시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사회가 더 아파졌습니다. 양극화도 더 심해졌고.

임상혁=가슴 아픈 일이에요. 실제 현장에서 만나고 들어보면 절감하게 됩니다. 공공 시스템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약자들이 너무 많거든요. 특히 노동현장에서 양극화는 이른바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고용시장 약자들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이분들은 다치거나 병이 들어도 치료를 못해요. 왜냐하면 치료하는 순간 생계가 없어지거든요. 그러니 그냥 버티다가 몸이 완전히 망가져버리고 다시 현장에 돌아갈 수 없게 되는거죠. 이 사람들을, 이렇게 아픈 사회를 우리가 돌봐야 합니다.

이철수=삶이 편해지고 사회가 안정되면 이념이든 삶의 철학이든 한쪽으로 과하게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을텐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잖아요. 균형 잡기도 어렵고. 전태일 시대에서 참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현실을 보면 이게 발전이라 할 수 있는지 자꾸 되묻게 됩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산재 치료를 강화하는 병원을 세우자고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는건데, 이 목소리는 국가와 공공이 들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건립비용 중 50억원은 국민 모금을 추진하고 있는데 상황은 어떻습니까.

임상혁=현재 12억원 정도 모였어요. 맨땅에 헤딩하고 있는거나 마찬가지였는데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 주셔서 감동받고 있습니다. 연대의 가치가 희미해진 시대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고 할까요.

이철수=말이 50억원이지 선의만 모아 이 금액을 만든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거예요. 물론 지금까지의 성과도 대단한건데 좀 더 많은 분들이 이 취지에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전시회를 구체적으로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평소에 전시회를 자주 갖는 편도 아니고 나서는 것도 익숙지 않거든요. 다행히 선의를 가진 분들이 계속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성사됐어요. 전태일열사 기일이 11월13일인데 그즈음에 맞춰 전시장도 구해졌고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거드는 것처럼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전태일의료센터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이철수판화전 ‘큰그릇이야, 늘 나누기 위한 준비!’는 다음달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담백한 선화같은, 잔잔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의 작품 6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새로 만든 작품들도 있다. ‘용비어천가’ ‘전태일의 불꽃을 들어올려 1, 2’ 등이다. 특히 ‘용비어천가’에 대해 그는 “‘용비어천가’를 제대로 읽고 큰 깨달음을 얻어 만들게 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흔히 ‘용비어천가’는 권력에 대한 아부의 뜻을 담은 부정적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이번 작업을 하며 본문을 잘 읽어보고 이를 어떻게 비틀어볼까 생각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결사 부분을 채운 내용은 임금을 향한 권고로 가득하거든요. 백성의 어려움을 임금이 모르면 하늘이 먼저 그를 버릴거라는 경고가 있는데 이번 작품에 그 내용을 담았습니다. ”

그는 이어 작품 판매에 대한 의욕도 밝혔다.

“이전 같으면 내 작품 사라고 말 못했죠. 그런데 이번엔 좀 달라요. 동창들을 비롯해 평소 제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연락이 닿는대로 전화해서 이야기 하고 있거든요. 주변에도 많이 팔아달라고요. 이번엔 장사꾼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웃음)”

 이철수 신작 용비어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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