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
"다쳐도 치료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사회가 손 내밀어야"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 나선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 ⓒ 차원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을 만나기 위해선 계단을 두 층 내려가야 한다. 지하 2층, 건물의 가장 낮은 곳이다. 원장실 문밖에는 박스들이 쌓여있다. 꼭대기 7층에 자리한 건 재활치료실. 녹색병원의 지향을 보여주는 배치다. 그런 녹색병원이 시민들에게 모금을 요청하고 있다. 전태일의료센터 건립(2027년 완공 목표)을 위해서다. 우리 사회 연대의 불꽃을 지피고 싶은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을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 원장실에서 만났다.
- 일하는 사람을 위한 '노동자 병원'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름에 전태일을 붙인 이유가 뭔가.
"이제 전태일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한 명에게라도 더 알리고 싶었다. 또 전태일 하면 뭔가 '강한' 이미지만 있는 것 같다. 처음 이 이름을 정했을 때도 만류가 있었다. 사실 그래서 더 전태일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태일은 약자를 위한 연대의 정신을 보여준 인물이다. 우리 사회 양극화가 극심하다. 서로 돕는 일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 과도한 경쟁 사회 속 배려와 연대의 가치가 희미해지고 있다. 사회적 공동체를 복원하고, 어려운 이들과 연대하는 '전태일 정신'을 되살리고 싶다."
-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54년이 흘렀다. 당시와 비교해 노동자들의 처우는 많이 나아진 것도 같은데.
"물론 많이 좋아졌다. 그렇게 12살, 13살에 공장에서 일해야 하는 이들은 없으니까. 그러나 노동의 양극화는 아직 심하다.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 가짜 3.3, 플랫폼, 특수고용 노동자들 같은 경우다. 이들은 다쳐도 치료받지 못한다. 그동안 생계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픈 몸을 이끌며 계속 일하고, 그러다 병이 더 심해져 아예 일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정말 많다.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
- 녹색병원은 작년 전태일노동상 단체부문을 수상할 정도로 노동자들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전태일의료센터가 추가로 필요한 이유는?
"더 잘하기 위해서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더 잘 챙기려고 한다. 예를 들어 교사들의 경우 우리가 정신 건강 조사를 해봤는데, 40%가 심한 우울 증상을 겪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래서 센터에 '선생님, 고맙습니다과(科)'를 만들려고 한다. 선생님들이 편하게 와서 상담받고, 건강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 이렇게 여러 영역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들이 많다. 이런 뜻에 공감해 많은 시민들과 단체들이 사회연대기금을 모아주고 있다. 모든 노동자가 아프면 치료받고, 재활을 통해 다시 일할 수 있게 하겠다."
"전태일의료센터, 다음 세대에 연대의 희망 남길 수 있길"
▲녹색병원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 새로 지어질 전태일의료센터에도 누적 기부금액이 개인 10만 원/단체 100만 원 이상인 경우, 건립 후 '기부자의 벽'에 이름이 새겨질 예정이다. ⓒ 차원
-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재 의료대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에서 1000명 증원을 요구한 적이 있는데, 갑자기 한꺼번에 2000명 증원이라니 어디서 나온 숫자인지 모르겠다. 이러면 의대 수업도 안 돌아간다. 그리고 의사들도 진지하게 현재 행위의 정당성을 고민해야 한다. 원점 재검토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세보다는,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의지를 보였으면 좋겠다. 일단 2000명은 멈추고, 사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 전태일의료센터 설립 모금을 위해 다양한 캠페인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가수 하림씨가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약칭 우사일)'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음원 수익 전액을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웃음). 또 사회적협동조합 오늘의행동과 함께 폐지를 끈으로 묶어 밖으로 내놓을 수 있는 툴킷(Tool kit)을 판매하는 '이어-줄'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발생한 수익금은 폐지수집 어르신의 안전한 노동과 운반을 돕는 운반구 개발 및 제작,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기부금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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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병원과 전태일의료센터가 사람들한테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나.
"제가 이 병원에 얼마나 있게 될지도 모르고, 언젠가 제 삶도 마감된다. 그러나 우리의 다음 세대가 우리 병원과 전태일의료센터를 보고 '우리 사회에 이런 모습도 있구나, 우리 사회를 이렇게 조금 더 아름답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심은 사회적 연대가 다음 세대의 희망으로 피어나길 꿈꾼다."
▲지난 10월 11일, 중랑구는 녹색병원 외부 주차장 옆길을 명예도로 '김경숙길'로 명명했다. 故 김경숙 열사는 1970년대 'YH무역' 여성 노동자로, 노동조합 설립 후 사측의 폐업 조치에 맞서 투쟁 중 경찰의 강제 진압 과정에 추락사했다. 현재 녹색병원은 YH무역 부지에 자리잡고 있고, 녹색병원 외부 주차장이자 곧 전태일의료센터가 들어설 장소는 YH무역의 기숙사였다. 이에 녹색병원과 녹색병원 외부 주차장 사잇길을 명예도로 '김경숙길'로 지정한 것이다. ⓒ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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