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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삼성 직업병 한혜경 “죽어도 삼성 심판대 올리고 싶다”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2-06-08 11:22:08
  • 조회수 11703

[스포츠서울]

 

삼성 직업병 한혜경 “죽어도 삼성 심판대 올리고 싶다”

 

                        걸어서 병원을 나간다는 의지로 재활운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한혜경 씨./ 이새롬 기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현재 투병중인 한혜경 씨를 만나러 가는 길. 문득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했던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가 생각났다.


영화는 전력사업을 하는 대기업 PG&E의 공장에서 유출된 크롬 성분이 수질을 오염, 마을 사람들을 병들게 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한 여성의 실화를 다루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소송에서 에린 브르코비치는 미국 법정사상 최고액인 3억3300만 달러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우리나라 재계서열 1위이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을 상대로 수년째 싸워오고 있는 한혜경 씨나, 그의 어머니 김시녀 씨가 만약 이 영화를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부러워했을 것이다. 에린 브로코비치는 소송 4년 만에 승리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삼성과의 싸움을 두고, ‘다윗과 골리앗’ 혹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로 비유하곤 한다. 승리하기 어려운 싸움이라는 것이다. 노동자에 지나지 않았던 그녀가 거대 기업 삼성과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다 몸도 불편한 그녀가 반드시 병원을 두발로 걸어 나가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스포츠서울닷컴>이 만난 한혜경 씨는 현재 원진재단 녹색병원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나마 병원의 도움이 있었기에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한 씨는 1995년 고3 재학 중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생산직으로 취직했다. 입사 당시 한 씨는 매우 건강했으나, 입사한 지 3년이 지나자 생리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한다. 퇴사 이유도 생리가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여성에게 생리가 가지는 의미는 여성으로서의 삶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2001년 8월, 일을 그만두었고 이후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졌으며, 시력도 점점 나빠졌다. 2005년 10월,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야 몸에 뇌종양을 키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곧바로 종양제거 수술을 받았으나 시력과 보행, 언어에 장애가 생겼다. 그녀의 나이 고작 스물여덟에 벌어진 일이다.


◆ 흔들리는 다리…비틀 비틀, 그래도 걷는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녹색병원 재활훈련센터. 휠체어에 앉은 채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몸은 가냘펐다. 이어 시작된 재활훈련. 지켜보는 사람이 오히려 불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한 씨가 재활운동을 하는 동안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 김시녀 씨의 얼굴엔 웃음이 한가득이다.


재활훈련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너무 좋다. 진짜 좋다. 만 7년 만에 이렇게 일어서고 걷는 모습을 보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나”라며 “저녁이면 보조기구를 이용해 병원 앞 공원을 다섯 바퀴를 걷는다. 좋아지고 있어서 요즘은 무척 신이 난다. 혜경이는 2012년 병원을 걸어 나가겠다는 의지로 있는 힘을 다해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재활이라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 씨의 재활훈련은 다리를 들고 팔에 힘을 주고, 앉았다 일어서고 다시 앉고, 왼발을 올리고 다시 오른발을 올리는 연습의 반복이다.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포기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 덧 재활센터를 걷고 있었다. 힘겹게 한 발 또, 한 발을 내딛으며 걷고 있었다. 걷는 모습에서 병원을 걸어 나가겠다는 그녀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걷는 내내 몸은 비틀 비틀 거렸지만, 그녀는 앞만 보고 걸었다.


 

              딸의 걷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 김시녀 씨의 얼굴엔 미소를 보였지만, 삼성과 관련된 이야기에선 분노만이 가득했다./ 이새롬 기자


재활훈련이 끝난 그녀. 거울을 통해 휠체어가 아닌, 꼿꼿하게 선 자신의 모습을 볼 때의 느낌이 궁금해졌다.


그녀는 “나는 전혀 힘들지 않다. 선생님, 그리고 엄마가 힘들다”면서 “거울의 내 모습을 보았을 때 참…어이가 없었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나. 이건희 회장 당신…. 이건희 회장은 왜 나 같은 환자를 만들어요”라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결국 그녀는 감정이 북받쳤는지 “나쁜 놈의 새끼들”이라고 토해냈다.


◆ 아플 줄 알았다면 삼성에 취직 안했을 것


그녀는 1995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취직했다. 누구나가 부러워했던 회사로의 취직이었으며, 개인에게도 기쁨이었다. 그런데 2012년 현재 그녀는 ‘만약, 삼성에 취직하지 않았다면?’이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있다.


“(이런 병에 걸릴 줄 알았다면) 1년만 일하고 나올걸.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가끔씩 들려오는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은 두 모녀의 가슴을 더욱더 아프게 한다. 얼마 전 삼성전자 노동자 중 56번째 사망자 소식이 전해졌다. 사망 소식을 접할 때면 가슴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망한 이들은 삼성을 상대로 싸워왔던 동지이자, 한 가정의 딸이고 엄마였을 그들이 너무나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오기 때문.


사망자 소식을 접하는 것과 관련해 어머니는 “분노를 떠나 인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삼성이 또 한명 죽였다. 나쁜 놈들, 그러고 왜 살까 싶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살까란 생각이 든다”며 분을 속으로 삼켰다.


이어 “얼마 전 공항에서 누군가가 이건희에게 달걀을 투척하려했던 뉴스를 보았다. 차라리 던지지 싶었다. 이건희를 보면 멱살 잡고 하고 싶은 말 다해 봤으면 좋겠다. 인간의 도리가 있는데 그들에겐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 씨의 경우는 사망자 소식이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녀는 “한 사람 죽을 수도 있고, 이게 뭐에요? 왜 같은 라인에서 일했던 사람이 두 명이나 죽어요”라며 “자신들이 신도 아니고, 같은 인간들끼리. 이건 말이 안되요. 얼마나 잘났는지 몰라도, 삼성은 말이 안되는 족속 들이다. 삼성 족속들 모두 XX야 한다. 삼성 하는 짓이 갈수록 한심하다”고 분노했다.


◆ 산재소송 끝까지…삼성, 해체 됐으면 좋겠다!


현재 두 모녀는 삼성을 상대로 산재소송을 진행 중이다. 무모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삼성이라는 대기업과 삼성에서 근무했던 노동자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가보아도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을 이어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어머니는 “100% 소송에서 삼성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지금은 돈도 돈이지만, 죽어도 삼성을 심판대에 올리기 위해서 끝까지 소송을 하려한다”며 “삼성과 싸우는 사람은 소수의 인원이지만, 모두가 한마음이다. 끝까지 갈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누군가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결국은 돈 때문이구나”라며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모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에게 있어 돈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현재 두 모녀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무료로 치료해주는 병원과, 얼마 되지 않는 후원금이 전부다. 아픈 딸을 두고 일을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만약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이다.


따라서 두 모녀에게 산재인정은 각별하고 절실 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산재만 인정된다면…. 하지만 지금은 혜경이가 열심히 운동해서 낫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해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녀는 삼성과의 싸움에 지더라도 끝까지 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이새롬 기자


2009년 3월 한 씨는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에 산업재해보상보험 최초요양급여신청을 접수했다. 8개월이 흐른 2010년 1월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그해 4월14일 심사청구를 제기했으나, 4개월 뒤 또 불승인 통지를 받았다. 10월에는 노동부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청구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현재 산재소송이 1차 재판 중에 있다.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굳이 이렇게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할까 싶을 정도다. 삼성이 먼저 손을 내밀었을 당시 그 손을 잡았다면, 생활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사실 삼성에서는 지난 2009년 한 씨에게 연금 형태로 돈을 주겠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당시 금액이 약 4억8000만원이었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웠을 모녀에게는 솔깃한 제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녀는 이를 거절했다.


어머니는 “산재신청 기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삼성은 산재접수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돈을 제안했던 것 같다”면서 “사실 받고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딸에게 이야기했지만 반대했다. 너무나 속상해서 혜경이의 뺨을 네 대정도 때렸던 것 같다. 당시 너무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혜경이는 반올림 식구들을 배신할 수 없다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두 모녀에게 삼성은 싸워야할 상대이면서 지우고 싶은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 1995년 그날이 아니었다면 모녀에게 삼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회사였을 것이며, 삼성의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2012년 현재 두 모녀에게 삼성은 분노의 대상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두 모녀에게 삼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물었다.


어머니는 “사람답게 살기 힘든 족속들이다. 정직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건희야말로 정직하게 살았으면 싶다. 애꿎은 어린 아이들 데려다 그만 죽였으면 한다. 그리고 삼성이 해체됐으면 좋겠다. 이재용에게 얽매이지 않고 해체됐으면 좋겠다. 삼성의 로고만 보아도 화가 난다”면서 딸의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춘천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한 씨는 “재활운동을 열심히 해서 빨리 걷고 싶어요. 경락마사지사가 되고 싶어요. 경락마사지로 혈을 뚫어주면 못쓰던 다리도 잘 쓰게 하는 방법이 있데요. 노인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난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요.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며 “빨리 산재 인정해 주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모녀가 그토록 원하는 것은 산업재해 인정이다. 사실 산업재해는 ‘노동과정에서 작업환경 또는 작업행동 등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하는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로 요약할 수 있다. 모녀는 이를 인정받기 위해 오늘도 삼성과 싸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싸워 나갈 예정이다.

흔히 강인한 여성을 잔 다르크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잔 다르크와 같은 모습이길 원치 않았다. 다만, 시대를 살아가며 같은 또래의 이들처럼 즐기고 또, 한 여성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 그거면 족해 보였다.


스포츠한국 이철영 기자/cuba20@media.sportsseoul.com

자료출처_http://news.sportsseoul.com/read/economy/104667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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